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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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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밤 새벽, 삶고 찌는 듯하던 더위도 인제야 잠깐 물러갔다. 질식한 듯싶던 바람이 갑자기 생기를 얻은 것이 슬슬 들자, 그 축축하고 눅눅한 입김에 흔들리어 새하얀 달빛이 흩어졌다. 그 흰 가루는 마치 눈보라 모양으로 입때껏 부글부글 괴어 오르던 땀을 싸늘하게 식히는 듯하였다.
더위에 헐떡이는 것같이, 훨씬 열린 경화의 방 미닫이는 아직도 닫히지 않았다. 병일이와 단둘이 자는 꼴을, 어둠으로 가리우노라고 전등불은 꺼두었건만 그 대신 속 없는 달빛이 기어들어 올 줄은 몰랐다. 연옥색 망사모기장으로 걸어 놓으매 밝고 흰 광선은 푸르게 변하여, 햇발에 비친 바닷속도 이러할 듯. 그렇다면 젊은 사내와 계집의 손길, 발길에 채이고 밀리어, 여기 불룩불룩, 저기 꾸김꾸김한 모시 겹이불은 굼실거리는 물결이라 할까. 벼개와 요, 이불을 내버리고 맨 방바닥에 굴러와서 자던 병일은 선선한 기운에 잠이 깨었다. 어젯밤 명월관에서 삐루에다가 위스키를 많이 타 먹은 탓으로 눈 뜰 겨를도 없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낀 그는 자리끼를 거진 다 말리고 보니, 화류 문갑 위에 얹힌 자개박이 체경이 번들번들하며, 그 옆에 놓인 유리 항아리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금붕어가 역력히 보였다. 이 밝은 빛의 원인을 알아차리자, 그는 미닫이 편으로 고개를 돌리었다. --- “새빨간 웃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