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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불량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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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주(丙周)는 오늘 밤에도 사람의 물결에 휩싸여 창경원 문 안으로 들어섰다. 비 개인 뒤의 창경원 안은 깨끗하였다. 먼지를 먹으러 오는지, 꽃구경을 오는지 까닭을 알 수 없을 만큼 번잡하던 창경원 안의 사람도 깨끗하여 보였다. 속취(俗趣)와 진애에 젖고 물들었던 꽃과 불은 오늘 저녁만은 꽃다웠고 불다웠다. 병주는 지는 꽃잎이 서늘한 바람에 약간 휘날리는 꽃 밑으로 식물원 편을 향하고 천천히 걸었다.
구경꾼은 여전히 많았다. 그러나 대개는 새 얼굴이었다. 그는 야앵(夜櫻)이 열린 뒤로 일주일을 두고 하룻밤도 빠지는 일 없이 저녁밥만 먹으면 발이 이곳으로 저절로 놓였다. 이것이 그에게는 이 며칠 동안의 값 헐한 향락이었다. 쓸쓸한 집에 들어 있어서 쓸데없는 궁리만 하는 것보다, 이곳으로 와서 꽃구경, 불구경, 사람 구경을 하는 것이 그에게는 적지 않은 위안이 되었었다. 어떠한 밤이면 자기 집을 나서면서도 자기를 웃었으나, 가는 발을 멈추어 다른 곳으로 돌이킬 만한 아무 유혹도 그는 마음에 가지지 못하였다. 병주는 연못가에 밤마다 앉는 벤치 곁으로 갔다. 다행히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연못가엔 여러 사람이 둘러서서 물 가운데의 일루미네이션으로 꾸민 탑을 어둠을 통하여 바라보고 섰다. 마치 무지개가 물 위에서 곤두박질 치는 것도 같고, 댄스하는 것도 같다. 병주의 머릿속에도 무지개가 섰다. 그 무지개를 사라지게 할 아무런 빛도 아직 발견치 못한 끄는 눈을 사면으로 휘둘렀다. 그러나 그로 하여금 저녁마다 호기심을 갖게 한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병주가 쓸쓸한 집에 있지 못하고 이곳으로 오는 이유가 꽃, 불, 사람, 그 밖에 또 하나 있었다. 이 이유는 그 스스로 자기를 속임이나 아닌가 의심할 만큼 어둠 속에 깊이 갈무리해두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연못가 벤치에 걸터만 앉으면, 그의 저녁마다 이곳에 오는 이유가 물속의 일루미네이션 탑처럼 분명하고 황홀하게 그의 가슴을 괴고 올라왔다. --- “가상의 불량소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