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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행(太平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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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부엌에서 달려왔을 때는 어린애는 얼굴과 온몸이 불로 데어서, 참혹히도 기절을 한 때였었다.
범나비의 아무 뜻도 없는 이 소여행(小旅行)은 여기에 그 첫 비극을 일으켰다. 기차의 기관수인 어린애의 아버지는, 이틀 밤낮을 꼭 자기의 죽어 가는 외아들의 곁을 떠나지를 않고 간호하였다. 그러나 운명이라 하는 커다란 힘은 사람의 손으로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어린애는, 사흘째 되는 새벽, 마침내 풍을 일으켜 죽어 버렸다. 하관(下關)가는 급행열차가 신교역(新橋驛)을 떠났다. 기관수는 죽은 어린애의 아버지. 눈을 멀거니 뜨고 있는 그의 앞에는, 죽은 애의 형용이 어릿거렸다. 사흘을 한잠을 안 잤지만, 졸음만 안 올 뿐더러 정신은 더욱 똑똑하여졌다. 그러나 그는 아무러한 이해력도 없었다. 모든 일이 자기게는 무의미하다는 이해력조차 그에게는 없었다. 마땅히 정거하여야 할 정거장을 그냥 지나려다가 조수에게 주의를 받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었다. 급각도(急角度)에도 전속력으로 가서(차장을 통하여) 손님에게 꾸중을 들은 일도 몇 번 있었다. 그러나 그 주의 그 꾸중이 모두 두 초만 지나면 스러져 버리고 잊어버려져서, 그는 물고기의 눈과 같은 정신없는 눈으로 다만 꺼벅꺼벅 앞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었다. 기차는 한 번도 제 시간에 정거장에 들어서 본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 기차가 신호(神戶)에 거진 이르러서 어떤 커브를 돌 때에, 가장 큰 비극은 일어났다. 덜걱! 소리와 함께 기관차는 선로를 벗어나서 뒤에 달린 십여 량(輛)의 객차와 함께 두어 길 되는 벼랑에서 떨어졌다. 부르짖음, 신음하는 소리, 의미없는 고함소리, 일본 철도사에 공전(空前)이요 또한 절후(絶後)일 떨릴 비극은 일어났다. 당시의 신문을 보건대 즉사자 이백칠십여 명, 생명이 위독한 중상자 백여 명, 그저 중상자 백여 명, 무상자(無傷者) 한 사람도 없었다고 보고되었다. --- “태평행(太平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