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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총각의 만복(晩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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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로 이조 숙종시대(肅宗時代)였다. 전라남도 광주땅(全南光州郡)에는 고유(高庾)라 하는 늙은 총각이 있었으니 그는 본래 선조시대(宣祖時代)에 문장으로 또는 충신으로 유명하던 고제봉경명선생(高霽峰敬命先生)의 후예로 대대 문벌도 상당하였고 생활도 또한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지만은 그가 열한살 안팎될 시절에 와서는 가운(家運)이 아주 기울어지게 되어 그의 부친이 남의 빚 보증을 하였던 관계로 가산을 전부 탕진하고 최후에는 그 부모까지 내외가 세상을 떠나게 되니 홀로 남아 있는 고아고유(孤兒高庾)는 사고무친 몸을 의지 할 곳이 없어 동네 사람의 집 신세를 지며 동쪽에 가서 밥 한끼 얻어 먹고 서쪽에 가서 잠 한잠을 이루고 하면서 구걸을 하다싶이 하게 되니 아무 공부도 할 수가 없었다.
나이 근 이십이 되도록 글 한자를 알지 못하고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 동네에서 몇해 동안 그러한 생활을 하다가 하루는 우연히 생각하기를 『남자가 세상에 나서 남처럼 공부도 못하고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할바에야 차라리 남모르는 타향에 가서 하는 것이 옳지, 창피하게 제 고장에서 할 수 있겠나.』 하고 굳은 결심을 하고 자기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더벅머리 쇠코 잠방이에다 헌옷 보따리를 둘둘 말아서 어깨에다 둘러메고 정든 산천을 이별하고 낯설고 눈설은 타도 타향을 향하여 갔었다. 먼저 경상남도 몇 고을을 거쳐서 다시 경상북도 지방으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도중에서 마침 어떤 사람을 만나 같이 간다는 것이 바로 고령땅(高靈) 어떤 농촌이었다. 그는 평생에 배운 것이란 농사 짓는 일밖에 없는 까닭에 그 곳에 가서도 역시 김첨지(金僉知)란 늙은 영감의 집에서 머슴 살이를 하게 되었다. --- “노총각의 만복(晩福)”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