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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의 기품(氣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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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지금으로부터 육백년 전. 바로 고려의 왕조가 망하고 한양에 이조가 새로 도읍하기 전 삼십여년 안팎이 되는 해였다.
황해도 배천군(黃海道白川郡)에 사는 어떤 젊은 엽사(獵師) 한 사람이 영변 묘향산(寧邊妙香山)으로 사냥을 갔었다. 짐승을 잡는 재미에 해가 가는 것도 알지 못하고 자꾸만 심산궁곡(深山窮谷)으로 가다가 급기야 어떤 무인지경에 이르러서는 해가 아주 서산에 떨어져서 천지가 암흑하게 되었다. 지척을 분별하기 어려운 적막한 산중에 인적(人跡)이 아주 고요하고 다만 바람소리 물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 중에도 호랑이와 곰 같은 맹수가 가끔 가다가 산이 울리도록 우는데 아무리 평소에 용맹스럽던 엽사라도 무시무시하여 머리 끝이 으쓱으쓱하여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날이 저물어서 어찌할 도리가 없던 차에 엽사는 아무 곳이라도 은신할 수만 있으면 하루 밤을 자고 가려고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길을 잃은 장님 모양으로 이곳 저곳을 헤매이며 찾아 다녔다. 옛말에 절처봉생(絶處逢生)이라는 말과 같이 한 산골짜기에 다다르니 뜻밖에 오막살이 초가가 한집이 있는데 반딧불 같은 조그만 등불 빛이 나무 사이로 비치었다. --- “고려(高麗)의 기품(氣品)”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