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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천추(遺芳千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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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수원(水原)이 팔십리, 거기서 또 다시 팔 구십리 떡점거리(병점[?店]) 오산(烏山)장터를 지나 진위(振威) 읍내서 다시 남으로 내려가면 평택(平澤)이라는 고을이 있으니 예전에는 충청도였지만 지금은 경기도 땅이며 삼남(三南)으로 통하는 큰 길가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앞에는 오산(烏山) 벌 넓은 들판을 끌어 안고 아래로는 능수버들이 봄마다 늘어지는 천안(天安)삼거리로 통해 있으니 조그만 고을일 망정 무던히 긴요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곳이었다.
때는 화평하고 백성들은 성덕을 노래하며 요순 건곤이 무사 태평하던 시절에 가을 추수를 막 끝마친 뒤이라 집집마다 노적더미, 창고마다 볏섬이다. 봄 여름 가을에 애써 일을 하던 시골 농군들은 일년에 한번 한가한 때를 만났다고 따뜻한 사랑방에서 담배 연기를 퍽퍽 피우며 글을 아는 머슴을 추려 내어서 까므락 까므락 희미한 등잔밑에서 밤마다 매일밤 특청 재청으로 심청전 춘향전을 소리 높여 읽을 때, 마굿간의 여물 먹는 송아지도 잠이 들고 먼촌의 개짖는 소리도 없이 고요한 밤. --- “유방천추(遺芳千秋)”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