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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양심이 결여한 우리 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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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願目)을 이와 같이 정하고 고(稿)를 기(起)하려고 붓을 들음에 당하여 이러한 기억이 절로 나옵니다.
내가 우리나라에 있을 때에 나의 벗 K는 자기의 엄격한 가정의 간섭과 제재로 말미암아 자유로운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엄격하다는 것보다도 차라리 완고(頑固)라 하는 편이 더욱 적절한 말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K는 자기 부친의 너무 완명(頑冥) 고루(固陋)한 것을 민연(憫然)히 여기는 동시에 우리 조선 부로(父老)들에게 큰 반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일일은 여러 친구가 모여서 우리 청년들이 어느 때에든지 말하는 바와 같이 현금 우리 사회의 모든 불평에 대하여 호상(互相) 만장(萬丈)의 기염을 토할 때에 K는 말하기를 “우리 부로(父老)들의 완고한 행동에 대하여는 소위 언론기관이란 것들이 너무 침묵을 지키고 무신경한 듯해요. 꼭 남의 일 보듯이 해요. 나는 한번 신문이나 잡지의 지면을 빌어서 우리 부로(父老)네의 완명(頑冥)한 행동에 일대 통봉(痛棒)을 주려 하였더니 일전 모(某) 신문의 사설에 내가 말하려는 바 같은 논조로 그것을 통리(痛?) 하였습디다. 나는 참으로 통쾌히 여겼습니다.” --- “예술적 양심이 결여한 우리 문단”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