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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의 어린 두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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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우리들』 종간호에 어린 두 딸에게」라는 소설을 쓴지 벌써 1년 반이 훨씬 넘었다.
아내가 두 어린 딸을 놓고 세상을 떠난 지 이럭저럭 2년이 가까워 온다. 내가 잡지 위에다 소설이라는 이름을 빌려 어미 잃은 두 딸의 기록을 실었을 때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각도로 그것을 비판하였다. 어떤 비평가는 완전한 소설 월평가의 입장에서 정론적 색채가 희박하여지고 예술적 향기가 농후하여 가는 작가적 진보라고 이 소설 아닌 소설을 비판하였다. 또 어떤 비평가는 지사연한 태도라고 좀 이해하기 힘든 언구로 이것을 평하였다. 어떤 동무는 정면으로 그것을 욕설하였다. 애상적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 동무는 나를 가리켜 체면도 아무것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애처가라 부르고 아내 잃더니 사람 버렸다고 말하였다. 시골서 평양만 나오면 만나는 동무마다 악수 뒤에 오는 말이 꼭 ‘아내의 묘참(墓參)인가?’였다. 심한 동무는 ‘나도 그런 효자 하나 뒀으면’하고 경멸의 표정을 눈자욱에 그리었다. 이렇게 해서 아는 동무들에게서 혹은 모르는 동무들에게서 오는 편지 속에 ‘어린 두 딸’의 이야기가 나올 때엔 이것이 또 나에 대한 야유나 아닌가 싶어 그 문장의 표리를 샅샅이 캐어 보게 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나는 항상 생각하였다. --- “그 뒤의 어린 두 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