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날 만평(漫評)
|
|
- 잡지계[雜誌界]에 대한
잡지[雜誌] 여름날 정돈된 논이나 평은 쓰기에도 덥고 읽기에도 더운 염천이다. 여기에 그 쓰기도 힘들고 읽기도 힘든 ‘굳은 논평’을 피하여 만평식으로 조선 출판계에 대하여 몇 마디 적어 보고자 한다. 출판계에 대한 만평을 쓰고자 하매 먼저 그 말이 잡지계에 미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조선에서 한편에서 생겨나서 한편으로 스러져 없어지는 잡지가 수가 없다. 한때 잡지 끈 시대가 지나간 뒤에 조선 사람 새에는 놀랍게 잡지열이 생겼다. 잡지란 천 부를 팔기가 힘든 것 - 따라서 잡지는 반드시 손해보는 것 - 이런 생각 때문에 한때 조선에서는 잡지의 그림자가 끊어졌다. 그때는 겨우 7, 8의 〈삼천리[三千里]〉와〈개벽[開闢]〉사의 2, 3잡지와 특수 잡지 수종 밖에는 잡지의 종자가 없게까지 된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에 조선 사람의 새에는 독서열이 놀랍게 많아졌다. 각 신문의 문맹 퇴치 운동이 각곳에서 일어난 지식욕으로 독서열은 무섭게 자랐다. 겨우 수종[數種]밖에 되지 않던 잡지들이 놀라운 부수로 팔리게 되었다. 천 부를 팔기가 힘든다는 조선의 잡지들이 만 부를 쑥쑥 넘겨 가게 되었다. 여기서 잡지 홍수 시대는 현출케 된 것이다. 〈신소설[新小說]〉이 창간되었다. 〈대조[大潮]〉가 창간되었다. 〈여자시대[女子時代]〉가 창간되었다. 〈동광[東光]〉이 부활되었다. 〈비판[批判]〉이 생겨났다. 〈신동아[新東亞]〉가 생겨났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제각기 잡지를 내었다. 잡지가 수삼 종류밖에 못 될 때는 모든 잡지가 모두 팔리는 부수가 상당하였다. 일변 늘어 가는 독서회라 부족한 출판물 때문에 잡지의 팔리는 부수는 과연 굉장하였다. 〈삼천리[三千里]〉가 대성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그러나 잡지 홍수 시대를 현출하면서부터는 그 많은 잡지가 다 독서층에 소화될 리가 없었다. 근거가 없이 자본이 부족하게 - 혹은 지반이 없이 - 혹은 목표가 없이 시작되었던 잡지는 한편으로 일변 꺼꾸러져 없어졌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다시 새로운 잡지가 자꾸 생겨났다. 3?1사건 뒤에 한때 생겨났던 잡지 홍수 시대와 3호[號] 폐간잡지 속출 시대는 여기 또 다시 생겨나는 셈이다. 어느 기민한 광고업자가 이 잡지들에게 ‘축 폐간’ 광고를 모집하러 다녀도 그 성적이 괜찮으니만치 폐간 잡지가 속출된다. --- “여름날 만평(漫評)”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