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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옹]과 부성애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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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자크 연구 노트 1
오노레·드·발자크는 「인간희곡총서문(人間戱曲總序文)」에서, "불란서 사회가 역사가가 되고, 나 자신이 그의 비서로 근무하는 것으로 충분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발자크의 대수해(大樹海)를 향하여 탐색의 길을 떠나면서, 그를 모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보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한다. "「인간희곡」이 교사가 되고, 나는 하나의 작은 소학동(小學童)이 되는 것으로 충분하리다." 그러므로 발자크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는 「인간희곡」의 대수해(大樹海)를 섭렵한 뒤에 가능할 것이며, 그에 대한 완전한 비판적 섭취는 오랜 뒷날에 이루어질 것이다. 이 노트는 그의 유일한 기초가 될 것을 희망하고 쓰여지는 것이다. 「고리오 옹(翁)」은 1834년 9월에 완성되었다. 서른 여섯 살 때의 작품이다. 파리 일류 살롱에 자주 출입하여 영국의 명문출신 뷔스콩티 부인과 각별한 우정을 맺던 시기이며, 타방(他方) 그의 일생에 있어 가장 커다란 영향과 관련을 가진 앙스카 부인과도 쥬네브에서 만났던 해에 쓰여진 작품이다. 이 해에 「절대의 탐구」, 「삼십중년여(三十中年女)」와 중편 「랑제 공작 부인」의 3권과 「고리오 옹」이 상재(上梓)되었다. 「인간희곡」이 1829년의 「부르봉 왕당(王黨)」과 「결혼생리학」에서 비롯한다 하여도, 그의 전사업을 「인간희곡」이라 명명코자 착안하고, 비로소 조직적인 계획을 세운 것은 1836년이었고, 「인간희곡총서문(人間戱曲總序文)」을 초(草)한 것은 1842년 7월이었다. 그러므로 「고리오 옹」은 그가 문필사업을 시작한 당초에 생각하였던 ‘수세기에 걸친 연속소설’에서 스코트적 역사소설의 개념을 극복하고, 점차 18세기의 종국(終局)과 19세기의 초두(初頭)에 국한된 불란서 사회의 ‘인간희곡’을 제작하려는 의도가 성숙되어가던 과정에 쓰여진 작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고리오옹]과 부성애 · 기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