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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原理)와 시무(時務)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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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계 상반기 소묘
신문 학예면이나 잡지 같은 데 실리는 논문들은 될 수 있으면 빼놓지 말고 읽어두는 습관인데, 지금 상반기 평론계의 결산을 하라는 주문을 받고 생각해 보니 어쩐 까닭인지 하나도 머리에 떠오르는 논제가 없다. 무슨 문제가 새로이 제기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가운데로 하고 평론가들이 토론을 하였는지, 그런 것이 도무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감명 있게 읽었다는 인상을 남겨주는 어떤 한사람의 논문의 제목 조차 생각이 나질 않는 것이다. 어려운 시대라는 것을 느꼈다. 평론하고 비평하기가 얼마나 어려워졌는가를 느끼고 새삼스러이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내가 지금 소묘의 대상으로 하려는 시기는 지나(支那) 사변이 3년을 넘어 중요한 계단에 올라섰을뿐 아니라 구라파의 전란도 방감(方?)하여 북구와 백(白), 란(蘭)을 거쳐 이미 불란서의 항복이 전하여지는 시기에 긍(亘)하여 있다. 지구 위의 낡은 질서가 물러가고 새로운 질서가 찾아오려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순간에 속하여 있는 것이다. 철학자와 평론가는 이 세계사의 커다란 전환에 문화 이념을 부여하고 지도 원리를 세워주려고 용약(勇躍)하여 필봉(筆鋒)과 학문적 온축(蘊蓄)을 가다듬고 기울이는 시기가 아니면 아니 된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사의 전환기에 처하여 하나의 시무의 말도 원리도 그리고 포즈조차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럽고 또 슬픈 일이냐. 역사에 대해서 발언하지 못하는 평론의 존재란 우리의 두뇌가 상상할 수 없던 상태는 아니었을까. 그러나 정(正)히 그러한 기막힌 상태가 지금 우리 평론계를 찾아오고 있는 것이나 아니가. --- “원리(原理)와 시무(時務)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