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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소설(新聞小說)은 어떻게 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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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소설[新聞小說]이라는 것은 보통 소설[小說]과 다르다
신문소설[新聞小說]이라는 것 신문소설이라는 것을 보는 두 가지의 눈이 있다. 첫째는 신문인 측의 눈이요, 하나는 청교도적 문인의 눈이다. 이 두 가지의 눈을 따라서 신문소설에 관한 해석도 전연히 두 가지로 나누인다. 신문인에의 눈으로는 내용이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고려되는 것이 ‘이 소설이 신문 지상에 적합하냐, 매일 백 몇 십 행씩 연재를 하여 신문을 장식하면 독자가 그 때문에 끊으려는 신문을 끊지를 못하고 그냥 구독하겠느냐, 이 소설은 그만한 흥미와 매력을 가졌느냐, 첫 회부터 이 소설은 독자의 흥미를 넉넉히 끄을겠느냐, 중도에서 읽기 시작해도 넉넉히 흥미를 끄을겠느냐, 남의 집에 이웃을 가서 우연히 그 한 회를 보고도 그 소설의 매력에 취하여 이튿날부터 그 신문의 구독자가 되겠느냐, 매회에 넉넉히 클라이막스가 들어서 한 회뿐으로도 넉넉히 재미있게 보겠느냐, 지리한 점은 없느냐, 그 한 회라도 독자의 하품을 자아낼 만한 곳이 없느냐’ 하는 것이다. 거기 반하여 문인 측의 눈은 그 소설을 제1회부터 종말까지를 통하여 보아서 거기서 문예적 가치를 발견하면 그것으로 넉넉한 것으로서 그 중도에 비록 20회, 30회를 연하여 독자의 하품을 자아내는 지리하고 귀찮은 장면이 있을지라도 그런 점은 돌아보지 않는다. 여기서 신문인 측이 말하는 ‘걸작’과 문인 측에서 말하는 ‘걸작’과의 구별이 생기는 것이다. --- “신문소설(新聞小說)은 어떻게 써야 하나”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