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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이광수 씨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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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 정치와 문학과의 관련에 기(基)하여 -
1 춘원 이광수, 나는 그와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작년 늦은 가을 어느 결혼식장에서 연미복으로 입고 주례를 하면서 결혼에 대한 사적(史的) 고찰을 하고 있는 것을 특별한 주의 없이 들었고, 그 날 피로연 석상에서 우연히 그의 옆자리에 앉는 광영(光榮)을 얻어 자기 자랑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으나 그 날 그 곳에 모였던 우인들도 인사를 시켜줌에서 신통한 교우 관계를 금후에 기대할 수 없다는 듯이 소개의 노력을 아꼈으므로 이 절호의 기회도 나로 하여금 이 인기 있는 사상가, 소설가와 이야기할 계기를 만들어 주지는 못하였다. 그 때 춘원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루는 어떤 날 창의문(彰義門) 밖 씨의 집에 그 동리 어린애 하나가 숨이 하늘에 닿을 듯이 헐떡거리면서 찾아와 하는 말이 지금 저 고갯등에 있는 술집에서 라디오를 공짜로 듣다가 방송국 관리에게 취체(取締)를 당하고 있으니 선생 집 라디오도 빨리 치우라고 하더란다. 이 어린아이의 말에 춘원은 돈을 내고 버젓이 들으니까 감출 필요는 없다고 대답하였다 한다. 이 이야기를 한 뒤에 씨는 좌중을 바라보면서 이런 것을 보면 내가 창의문 밖에서 과히 인망은 잃지 않고 사는가 싶다고 만족한 웃음을 하였다. 나는 춘원의 이 좌담을 그의 옆에서 흥미 있게 듣고 있다가 그와 함께 이야기의 끝을 웃어 버렸다. 내가 춘원의 이야기를 웃은 것, 그것은 독자들이 직감적으로 판단하기 쉬운 이른바 조소라는 것은 아니었다. 조소라면 그 곳에 다분히 증오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이 때의 나의 웃음은 별로 증오의 감(感)은 삽입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나는 그 곳에서 더 많이 민족을 발견하였다. 내가 늘 생각하고 그러리라고 믿고 있던 춘원의 사상과 설화술이 이 곳에 그의 전모는 아니나 적어도 그 중요한 일부분을 보이고 있는 듯 생각키었기 때문이다. --- “춘원 이광수 씨를 말함”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