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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서의 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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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개관
지난 6월 16일 동백림(‘동베를린’의 한자 음역어 - 편집자)의 건축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10여 만의 노동자들이 돌연 소요와 반정부 데모 및 제네스트를 감행한 것은, 전 세계로 하여금 또다시 그 이목을 ‘철의 장막’에 집중하게 하였다. 17일에는 폭동은 더욱 악화되어 소련 당국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무장부대 1개 사를 출동, 반공 데모 참가자 중 총탄 그 밖에 의하여 5명이 사망, 적어도 150명이 부상하였다. 그 후 격화된 자유시민 군(群)은 소련군 1개 연대, 동독 인민경찰대 1만여 명과도 충돌이 생겼는데, 새로이 출동한 소련군 1개 사(師) 1만여 명은 소비에트 점령지구 내의 제 기지에서 동백림 경계선에 도착하고, 중전차 200대를 동원시켜 소비에트가 구주 지역의 도시에서 폭동 진압, 계엄령의 유지를 위해서 사용한 전차·화기·보병으로서는 전후 최대의 것이다(AP). 계속하여 제네스트는 소비에트 점령 각 지구에도 파급되고, 철도노동자가 동백림에 동정하여 직장을 방기함으로써 동독 통신망은 마비상태에 빠졌다. 계엄령 포고에도 불구하고 17일 야중(夜中)에는 알렉산더 광장 및 포츠담 광장, 그리고 스탈린가(구 프랑크푸르트가)에서 맹렬한 충돌이 발생하여 소련병과 경찰대는 여러 차례에 걸쳐 데모대에서 발포하였다. --- “자유에서의 생존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