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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作品)과 제재(題材)의 문제(問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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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잡고 원고지를 대할 때마다 제재로 한참씩 머리를 쓴다.
글을 씀에 제재로 열심한다 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서 별로이 신기한 말이 아니다. 여기 지금 말하는 바 제재의 고심이라 하는 것은 이전에 보통 말하던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무엇을 쓰랴 하는 것보다도 어떻게 쓰랴 하는 것보다도 그 쓴 것의 미치는 영향과 결과를 생각하는 데 고심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론 나 개인의 심경의 변화와 성격이며 취미의 변화에서 생겨난 변태적 결실이겠지만 현재의 내게는 소설의 제재가 극히 국한되었다. 세상 보통의 '소설'이라는 것은 쓸 흥미를 전혀 잃어버렸다. 천 편을 써도 그것이요, 만편을 써도 그것으로서 그것을 쓸 흥미도 잃어버렸고 쓸 가치도 인정되지 않는다. 어떤 사내가 있다, 어떤 계집이 있다, 아이도 있다. 무론 전혀 공상 중의 인물인 이 인물들을 소설에다가 등장시켜서 이야기도 시키고, 싸움도 붙이고, 연애도 시키고 여행이며 산보도 시킨다. 그러다가는 이렁저렁하여 끝을 만든다. 마치 어린애들의 소꼽놀이다. 달래로 머리 만든 어머니도 있고, 옥수수 수염으로 머리를 만든 처녀도 있고, 수수깡이를 꺾어 수염을 그려 넣은 아버지도 있어서 이 자리로 옮겨 놓고 저 자리로 치워 놓는 어린애들의 소꼽놀이와 다른 데가 어디랴. 이것을 쓰느라고 애를 쓰고, 이것을 인쇄하고 책 만드느라고 힘들이고, 이것을 읽으며 울고 불고 하는 것이 마치 어린애들이 소꼽놀이를 벌여 놓고 이것을 잡수세요, 저것 마시세요, 뜨겁지 않아요? 하는 것과 다름없이 보여서 어떤 때는 스스로 정 떨어지는 때도 있다. --- “작품(作品)과 제재(題材)의 문제(問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