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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점묘(早春點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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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없는 화재격장(隔墻)에서 불이 났다. 흐린 하늘에 눈발이 성기게 날리면서 화염은 오적어(烏賊魚) 모양으로 덩어리 먹을 퍽퍽 토한다. 많은 약품을 취급하는 큰 공장이란다. 거대한 불더미 속에서는 간헐적으로 재채기하듯이 색다른 연기 뭉텅이가 내뿜긴다. 약품이 폭발하나 보다.
역 송구스러운 말이나 불구경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뒤꼍으로 돌아가서 팔짱을 끼고 서서 턱살 밑으로 달겨드는 화광(火光)을 쳐다보고 섰자니까 얼굴이 후끈후끈해 들어오는 것이, 꽤 할 만하다. 잠시 황홀한 엑스터시 속에 놀아 본다. 불을 붙여 놓고 보니까 뜻밖에 너무도 엉성한 그 공장 바라크는 삽시간에 불길에 휘감겨 버리고 그리고 그 휘말린 혓바닥이 인접한 궤딱지 같은 빈민굴을 향하여 널름거리기 시작해서야 겨우 소방대가 달려왔다. 인제 정말 재미있다, 삼방(三方)으로 호스를 들이대고는 빈민굴 지붕 위에 올라서서 야단들이다. 하릴없이 깝친다. 이만큼 떨어져서 얼굴이 뜨거워 못 견디겠으니 거진 화염 속에 들어서다시피 바싹 다가선 소방대들은 어지간하렷다 하면서 여전히 점점 더 사나워 오는 훈훈한 불길을 쬐고 있자니까 인제는 게서 더 못 견디겠는지 호스 꼭지를 쥔 채 지붕에서 뛰어내려온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그 실오라기만도 못한 물줄기를 업신여기자니까 이번에는 호스를 화염 쪽에서 돌려서 잇닿은 빈민굴을 막 축이기 시작한다. 이미 화염에 굴뚝 빨래 널어 놓은 장대를 그슬리기 시작한 집에서들은 세간기명을 끌어내느라고 허겁지겁들 법석이다 하더니 헐어 내기 시작이다. --- “조춘점묘(早春點描)”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