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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帆船)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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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배가 인천에서 한 이틀 묵게 될지도 모른다는 정장의 말에 석은 가슴이 울렁하는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마치 꼭 사형이 되리라고 아주 깨끗이 단념하고 있던 죄수가 뜻밖에 석방이 된다는 말을 들은 때와도 같은 충격이었다. 만일에 꼭 이삼 일만 인천에서 지체가 될 마련이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당진엔가 하는 데를 가볼 수 있을 것이다. 범선이라도 인천서 해변까지면 하룻길밖에는 안 될 성싶었고, 배에서 당진까지가 이십리 가량 되어 보이고 오장골이란 동네는 지도에도 없는지라 정확한 거리는 알 수가 없었지만, 면천면이라고 보니 맨 변두리가 된대도 기껏해야 삼십리보다 더 멀성싶지가 않다. 그렇다면 올 적 갈 적 친대야 오십리니 배가 조금만 일찌감치 대어준다면, 밤길을 걸을 작정만 하면, 그날 안으로 처자가 있다는 오장골까지 들어갈 수 있을 게고, 이튿날 새벽에만 나온다면 늦어도 그 이튿날 밀물 때까지는 돌아가는 배에까지 댈 수가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꼭 몰살을 당한 줄만 알고 있던 가족이 전부 살아 있다는 이 희한한 사실 앞에 석은 꼭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지 않아도 반동 분자의 낙인이 찍힌 석의 가족이고 보니, 남겨둘 리도 만무리라 싶었지만, 더욱이 9?28 탈환 후에는 군에 적을 두게 된 터라 목숨을 붙여두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 “범선(帆船)에의 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