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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淵蓋蘇文)의 사년(死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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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막리지(莫離支:官名[관명] ─ 原註[원주])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사년(死年)이 고구려 보장왕(寶藏王) 25년(666) 당 고종(唐高宗) 건봉(乾封) 원년(檀君[단군] 2999년 ─ 原註[원주])인것은 『삼국사기』나 신ㆍ구『당서』의 기록한 바에 의하여 역래(歷來)의 사가들이 아무 의문 없이 전술(傳述)하여 왔다.
무릇 인물이란 것은 거의 시세의 제조하는 바라, 연개소문이 송도 말년에 났으며 쭉하여야 최영(崔瑩)이 될 뿐이며, 한양 말년에 났으면 대원군(大院君)이 될 뿐이지만, 다행히 고구려 전성시대, 곧 광개토왕(廣開土王) 이래의 광개(廣開)한 토지와 장수왕(長壽王) 이래 휴양(休養)한 민력과 3백만 이상의 수양제(隋煬帝) 해륙군(海陸軍)을 격파한 을지문덕(乙支文德) 이후 백전훈련(百戰訓練)의 군대를 가진 그 시대에 나서, 조선 과거 역사상 미증유의 군국적 침략주의를 행하던 인물이니, 그러면 시세가 연개소문을 낳음이요, 연개소문이 시세를 낳음이 아니다. ---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사년(死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