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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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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차라리 어두워 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벽촌의 여름날은 지루해서 죽겠을 만큼 길다. 동에 팔봉산,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 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돼먹었노? 농가가 가운데 길 하나를 두고 좌우로 한 10여 호씩 있다. 휘청거리는 소나무 기둥, 흙을 주물러 바른 벽, 강낭대로 둘러싼 울타리, 울타리를 덮은 호박덩굴, 모두가 그게 그것같이 똑같다. 어제 보던 댑싸리 나무, 오늘도 보는 김 서방, 내일도 보아야 할 흰둥이 검둥이. 해는 100도 가까운 볕을 지붕에도 벌판에도 뽕나무에도 암탉 꼬랑지에도 내리쬔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뜨거워하며 견딜 수가 없는 염서(炎署) 계속이다. 나는 아침을 먹었다. 할 일이 없다. 그러나 무작정 널따란 백지같은 ‘오늘’이라는 것이 내 앞에 펼쳐져 있으면서 무슨 기사(記事)라도 좋으니 강요한다. 나는 무엇이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연구해야 한다. 그럼 나는 최 서방네 집 사랑 툇마루 장기나 두러 갈까. 그것이 좋다. --- “권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