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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흥왕의 재래 삼비와 신출현의 마운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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震域[진역]의 碑版[비판]은 龍岡[용강] ?蟬神祠碑[점선신사비]로써 最古[최고]로 삼는다(西紀[서기] 第一世紀頃[제일세기경]). 그러나 이것은 漢民族[한민족]의 것이다. 海東[해동]의 民族[민족]에 의하여 西紀[서기] 四一四[사일사]년에 세워진 것에 永樂好太王[영락호태왕]의 碑[비]가 있으나, 그 所在[소재]가 시방은 半島[반도]의 域外[역외]에 속한다. 震人[진인]에 의하여 震土[진토]에 세워지고, 그러면서도 시방까지 傳[전]하는 것은 現在[현재]로서는 新羅[신라] 中興[중흥]의 英主[영주] 眞興王[진흥왕]의 紀績碑[기적비]보다 더 오래 된 것은 없다.
그런데 從來[종래] 알려져 있는 것만 해도 昌寧[창녕]ㆍ北漢山[북한산]ㆍ黃草嶺[황초령]의 三石[삼석]이 있다. 眞興王[진흥왕]의 偉勳鴻業[위훈홍업]이 이 정도를 가지고 大端[대단]하다고 할 것은 못되지마는, 이만한 古碑[고비]가 다 같이 永壽[영수]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은 오히려 奇異[기이]하다고 할 만하다. 특히 半島[반도]에 있어서 그렇다 할 것이다. --- “신라 진흥왕의 재래 삼비와 신출현의 마운령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