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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문학소론(발자크 연구 노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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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에 대하여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나는 대체로 장편소설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이다. 나 자신의 문학적 경험에 의하면 리얼리즘이 현대를 관철하는 길은 언제나 장편소설을 통하여서였다. 기계적인 분업사상에서 나는 이것을 경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것에 대한 나의 이해의 단초(端初)는 ‘장르’의 사적 고찰에서부터였다. 만일 산문정신이란 것이 현대에 살아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묘사의 정신을 말함이고, 그리고 이것은 무엇보다 먼저 장편소설에 있어서 문제될 것이다. 나는 많은 단편소설을 써왔고 앞으로도 그것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또한 단편소설에 대하여 수없이 많이 리얼리즘을 지껄이었다. 그러나 몇 개의 문예학적 술어(述語)나 추상적 공식을 버리고, 단편소설과 사회(시대)를 정면으로 대질시킬 때 나의 노력은 언제나 실패하였다. 단편소설(특히 내지(內地) 문단의 「창작」의 이입품(移入品))은 산문정신을 현대에서 살리는 데 적합한 문학형식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최근의 우리 비평가들이 리얼리즘을 운위(云謂)하면서 단편창작을 검토할 때, 리얼리즘이란 말이 공허한 채 자의적으로 쓰여지던가,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2, 3개의 문예학적 술어(述語)의 되풀이에 그쳤다. 리얼리즘은 씨 등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술어(述語)인 동시에 아무 것도 설명치 못하는 술어(述語)였다.
--- “관찰문학소론(발자크 연구 노트3)”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