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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침교명명유래기(琮沈橋命名由來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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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世宗) 때에 판사(判事)의 벼슬을 최종으로 다시 관에 오르지 못하고 녹록한 세월을 보내고 있던 윤기무(尹起畝)의 따님이 성종(成宗)의 비(妃)로 책립되어 궁중에 들게된 후부터 평화로운 궁중에는 때아닌 풍파가 자주일기 시작하였다.
윤비(尹妃)로 말하면 어제까지 비록 궁항에서 가난한 살림을 하는 빈족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다지 혁혁한 문벌가도 아닌 집안의 딸로, 꿈에도 예기할 수 없었을 국모(國母)의 높은 자리에 올랐은즉 마땅히 언행을 삼가며 덕을 닦아 자기 스스로의 행운을 길이 빛나게 할 것이며, 또 하나는 딸의 덕으로 임금의 장인으로서 부원군(府院君)이란 영화스런 자리에 오른 아버지로 하여금 국구(國舅)다운 체례를 지닐 수 있게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 아닌가. --- “종침교명명유래기(琮沈橋命名由來記)”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