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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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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의 목숨은 시각을 다투었다. 경직이가 귀국한 후 조금 생기가 나서 딸의 혼인을 보살펴주든 그는 또 다시 집과 발을 끓은 아들때문에 병이 났다. 경직이가 서울서 노는 계집을 얻어가지고 셋방 살님을 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뿐 아니라 고조와 오대조의 산소가 있는 여주(麗州) 땅의 이만평이나 되는 산림을 가도장을 해서 팔어먹은 것이 묘직이의 입으로 탄로가 났다. 또 한편으로는 고리대금업자가 격일해 와서 서투른 조선말로
“리자도 그저 내지 않으니 들어있는 집과 세간까지 차압할테요” 하고 위협을 하였다. 그러나 한림은 다시 다른 곳에 빗을 얻을 도리가 없었다. 이래저래 한림은 울홧병이 폭발하였든 것이다. --- “임종” 중에서 |